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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케이션 시대, VIP 관광의 새로운 조건은?

관리자 2026-08-26 조회수 24

2026.08.26 한국일보 [김지선의 세계는 한국여행 중]

데일리케이션 시대, VIP 관광의 새로운 조건은?

 

최근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극장가에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를 본 뒤 홍보차 한국을 찾았던 놀런 감독과 맷 데이먼, 샬리즈 세런의 인터뷰를 찾아보다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다. 이들은 공식 일정 사이 짧은 자유시간에 서울에서 무엇을 했을까.

 

첫 방한이었던 놀런 감독은 아내이자 제작자인 에마 토머스와 한강을 산책하고 익선동에서 소금빵을 맛봤으며 올리브영에도 들렀다. 아들의 한국계 미국인 여자친구가 서울에서 해볼 것을 추천해줬다고 한다. 세런은 스킨케어를 받았고, 데이먼은 고척돔에서 프로야구를 보며 한국 특유의 뜨거운 응원문화를 경험했다.

 

이들이 선택한 서울은 흥미롭다. 세계적인 감독과 스타에게 서울의 매력은 반드시 궁궐이나 박물관에 있지 않았다. 한강과 골목, 소금빵과 올리브영, 피부관리와 야구장이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도 방한 당시 홍대 삼겹살집과 치킨집을 찾았다. 지난해 12번째로 방한한 톰 크루즈는 한 인터뷰에서 새로운 곳에 가면 관광만 하지 않고 그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관광과 그 나라의 문화를 경험하는 것은 과연 다른 것일까.

 

관광(觀光)'주역'에 나오는 관국지광(觀國之光)’, 나라의 빛을 본다는 말에서 유래한다. 다른 나라의 문물과 풍속을 보고 이해한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놀런과 데이먼 역시 관광의 본래 의미에 충실했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무엇을 볼 것인지(목적지)’에 집중했던 관광의 중심은 이제 무엇을 해 볼 것인지(경험)’로 변하고 있다. 우리가 파리에 가면 파리지앵처럼 노천카페에 앉아 갓 구운 크루아상과 에스프레소를 즐겨보고 싶고, 뉴욕에 가면 뉴요커처럼 센트럴파크를 걷고 싶은 것과 같다. 이러한 현상은 데일리케이션(Dailycation)으로 설명된다. 데일리(Daily·일상적인)와 베이케이션(Vacation·휴가)을 합친 말이다.

 

물론 놀런과 데이먼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 홍보 일정 사이 자유시간이 몇 시간에 불과했을 테니 말이다. 바로 여기서 VIP 관광의 중요한 특징이 드러난다. VIP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존의 ‘34일 서울 패키지가 아닐 수 있다. 2시간, 6시간, 8시간짜리 알찬 여행이 필요하다.

 

유명 셀럽과 글로벌 CEO, 스포츠 스타, 아티스트는 물론 국가원수와 고위공무원, 국제기구 수장까지 VIP들은 관광이 아닌 다양한 공적 이유로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자유시간을 누가 관광으로 설계하느냐이다.

 

VIP 관광의 핵심은 프라이빗(Private)한 경험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개인 맞춤(Private), 보안(Security), 독점적 진입(Access), 신속성(Speed)이 중요하다. 체류시간이 짧더라도 이들의 동선과 경험은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돼 파급효과가 크다. 따라서 갑자기 두세 시간의 자유시간이 생기더라도 K푸드, K뷰티, 스포츠, 예술, 전통문화 등 한국의 핵심 콘텐츠(core content)를 개인 취향에 맞춰 즉시 제안하고 연결할 준비가 필요하다.

 

놀런과 데이먼의 동선이 화제가 된 것은 그들이 실제로 해보고 싶은 것을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관광업계의 역할은 관광을 연출하는 것(staging)’이 아니라 그 선택이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것(enabling)’이어야 한다. VIP의 취향과 관심에 맞는 한국의 핵심 콘텐츠를 큐레이션하고, 그 선택이 즉시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그림자 같은 안내자(silent concierge)’가 필요하다.

 

한국관광공사는 올해 세계적인 럭셔리 여행 네트워크 버츄오소(Virtuoso)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50개 이상의 럭셔리 관광상품을 개발할 계획이다. 그러나 상품만큼 중요한 것이 전문인력이다.

 

현재 외국인 관광객을 안내하는 국가공인 자격은 관광통역안내사. 앞으로는 그중에서도 VIP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의전과 보안은 물론 식문화, 예술, 스포츠, K콘텐츠에 대한 지식을 갖추며 예기치 않은 일정 변경에도 즉시 대응할 수 있는 VIP 전문 관광통역안내사와 개인 안내자(personal concierge)를 체계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외국어를 잘하는 통역사가 아니라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폭넓게 이해하고, 상대의 관심과 수준에 맞춰 한국을 설명할 수 있는 교양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여야 한다. 이런 인력은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VIP 관광을 준비한다는 것은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일만이 아니라, 그것을 제대로 전달하고 연결할 사람을 미리 키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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